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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나오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미치광이 과학자의 전형이다.

[참고] 이 글은 인페르노 특집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유의] 이 글에는 소설의 중요 내용과 결말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조브리스트: 미치광이 과학자인가 아름다운 희생자인가

신스키 박사는 그를 미쳤다고 본다. 세계보건기구의 수장인 그녀를 납치하듯 데려와 신분도 밝히지 않고 예의도 갖추지 않은 채 인류를 구해야 한다느니, 그러려면 질병을 만들어 내야 한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여 대니 정신 나간 작자가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안내된 장소나 그녀를 데려온 방식이나 그녀를 대하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로 보아 신분은 범상하지 않은 것 같다. 권력이나 재력이 굉장한 사람인 듯하다. 학식도 대단하다. 정신 나간 소리이기는 하지만 고도의 전문지식으로 말하고 있다. 전문가인 그녀도 반박하기 어려운 근거를 들이댄다. 그런데 결론이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그리고 그 궤변이 소름 끼친다. 이 정도의 힘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저런 생각을 실천하려 한다면 끔찍한 범죄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를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스키 박사가 조브리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로부터 받은 인상이 그러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정신 나간, 미치광이 과학자라고 단정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사무총장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동원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한다.

미치광이 과학자: 기이하거나 위험하거나

맞다. 조브리스트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치광이 과학자 캐릭터에 속한다. 이 캐릭터의 특징은 이렇다.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천재 과학자이다. 지식욕과 탐구욕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 욕구가 다른 것을 압도한다. 편집증 환자처럼 보인다. 자신의 연구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미칠 영향과 결과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다. 그 확신과 관련된 야망이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그 야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 야망을 실현하려는 열정이 과도하다. 대중이나 동료 과학자들에게는 그가 과대망상증에 걸렸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보인다.

두 부류가 있다. 생각이나 행동이 불안정하고 괴팍스럽지만 심성이 착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부류가 하나.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이런 괴짜 과학자들은 보통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을 돕는 역으로 등장한다. 이와 대조되는 부류.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괴팍스러운 정도를 넘어서서 비윤리적이거나 범죄적인 데까지 이른다. 때로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호칭은 이 부류에 더 적절하다.

천재 과학자가 미치광이로 변하는 전형적인 경로가 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열정이 지나쳐 동료 과학자와 대중으로부터 오해를 받는다. 그래서 소외되고 고립된다. 자기가 속한 곳에서 추방당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입기도 한다. 자기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여 사회에 복수하려고 하는 수도 있다. 그러다가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망설이지 않게 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뛰어남에 도취해 대중과 사회를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는 유형도 있다. 그런 야망을 이루기 위해 비윤리적이고 범죄적인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그래서 진짜 미치광이가 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이미지는 대개 비슷하다. 머리칼이 덥수룩하고, 때로 뻐드렁니가 났다. 실험실 가운 차림에 장갑 낀 손으로 정체 모를 액체가 부글거리는 시험관을 들고 다닌다. 이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실험을 하거나, 슈퍼 기능을 가진 로봇을 제조하거나, 맹독 바이러스, 가공할 성능의 살인 무기, 세계를 초토화할 수 있는 핵폭탄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해 있다. 이들의 이름에는 독일식 발음을 가진 이름이 많다. 아인슈타인이나 폰 브라운 박사가 독일계라서 천재 과학자는 어떻게든 독일과 관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세인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 듯.

 

조브리스트: 미치광이 과학자인가 아름다운 희생자인가?

우리의 조브리스트는 어떠한가? 그도 대중문화에 등장해 온 전형적인 미치광이 캐릭터의 특징을 두루 가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천재 과학자인데 그의 생각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반윤리적이다. 게다가 그는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이다. 다만 그는 전통적인 미치광이 과학자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이 소설에서 안타고니스트의 역을 맡고 있으면서 표면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묘사될 뿐이라는 점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우선 헝클어진 머리카락, 충혈된 눈, 두꺼운 안경, 떨고 있는 의수, 지저분한 가운, 더듬는 말 등 추하다거나 괴이해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반대로 그는 젠틀한 미남자이다. 키도 훤칠하다. 다만 신스키와 대면했을 때 보여준 것처럼 건방지고 오만한 태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천재들에게 공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건 민감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성격으로 보인다. 다른 자리, 예컨대 시에너를 만났을 때, 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을 끄는 매력을 가진 남자이다. 그는 미치광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가 소설에서 맡는 역할도 전통적인 미치광이 과학자의 역과는 다르다. 우선 동기에서 그는 다른 미친 과학자들과 다르다. 그는 개인적인 야망이나 권력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그것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이론에 과대망상적인 요소도 없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시에너도 그의 관찰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중이 그의 과학적이고 합리적 판단에 두려움을 느끼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시에너는 온전한 정신으로 그의 이론을 지지한다. 그녀가 그의 과학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인페르노”를 파괴하려고 했던 것은 그의 선의를 의심하거나 그 발명의 효과를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이 권력의 손에 들어가 사악하게 사용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대중을 적으로 삼고 대결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선한 주인공과 적대하는 미치광이 악한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대중을 사랑하고 그들을 멸망에서 구하려는 고결한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 사랑과 헌신이 대중과 사회로부터 오해받고 소외되었을 뿐이다. 그는 대중을 희생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오해하고 그를 적대시하는 대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그를 핍박하는 대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는 사탄의 이미지가 아니라 구세주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는 그가 말한 “아름다운 희생”을 실천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이야기가 재미있는 점은 그 아이러니에 있다 할 수 있다. 선한 목적을 가진 과학자가 악한 미치광이 과학자로 오인되어 쫓김을 당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심하여 만들어낸 과학적 발명품이 아이러니하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핵폭탄인 듯이 오해되어 숨 가쁘게 추적된다.

조브리스트는 선의의 동기와 고결한 목적을 가진 과학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미치광이 과학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과도하고 독단적인 열정 때문이다. 그의 편집증적 열정은 광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물학적 발명품이 광기의 산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시체로 길거리를 가득 채우게 하는 역병 바이러스는 아니었다. 그것은 야만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가 말한 대로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독단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 방법에 대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 고통과 죽음이 없다고 해서 윤리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말미에 신스키 박사는 목적이 고결하면 수단도 정당화되는가 하고 묻는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많은 광기의 증후가 고결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행동에서 발견될 수 있다.

휴브리스 hubris : 탁월한 자들의 오만

조브리스트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지만 오만하다. 천재는 때로 오만하다. 자신의 지능을 과신하고 대중의 판단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천재가 갖는 결함이다. 그리스어로 휴브리스라 불리는 이 오만의 결함 때문에 천재의 끝장이 비극이 될 수 있다. 천재가 보기에 대중은 무지하다. 이 길이 옳은데 대중은 저 길로 가고 있다. 저 길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데 몽매한 대중은 한사코 그 길을 가려 한다. 천재는 대중의 눈앞에 닥친 위험과 파멸을 막으려 하지만 대중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를 적대시한다. 이때 천재가 대중의 운명에 관심을 끊으면 좋으련만, 부탁 받지 않은 일을 하는 수가 있다. 대중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확신과 판단을 실천에 옮기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사회와 싸움이 벌어진다. 조브리스트도 인류를 구원하는 자로서 스스로 인류의 대표를 자임한다. 사실 그의 판단이 진실에 접근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진실에 대응하는 실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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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영국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존 밀턴(John Milton)의 [잃어버린 낙원(Paradise Lost)]에 나오는 루시퍼(Lucifer)를 그린 것. 루시퍼는 휴브리스를 가진 캐릭터의 원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범속한 대중의 정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늘의 윤리적 판단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든 기이한 생각과 행동에 우리는 무조건 광기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광기로 여겨진 많은 천재들의, 시대에 앞선 창조적 상상력과 통찰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야만의 삶에 머물러 있거나 오래전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타인의 삶과 사회에 해가 없다면 어떤 기이한 생각이나 행동도 일단 용인되고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당장 타인의 삶과 사회에 해악이 된다 여겨지더라도 다수와 장기적 시간의 맥락에서 더 이로운 것이라면 용인해야 한다는 철학도 있다. 더 나아가 윤리관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오늘의 문제에 대한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먼 미래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삶엔 제한된 시간만 주어지지 않았나? 그때그때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단하여야 하지 않는가? 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나의 판단과 결단을 미뤄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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