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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 and Ice

Robert Frost

Some say the world will end in fire,
Some say in ice.
From what I’ve tasted of desire
I hold with those who favor fire.
But if it had to perish twice,
I think I know enough of hate
To know that for destruction ice
Is also great
And would suffice.

 

불과 얼음

로버트 프로스트

세상이 불로 끝장난다는 사람도 있고
얼음으로 끝장난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욕망을 맛본 바로는
불을 택한 사람들에 공감이 간다
허나 세상이 두 번 망해야 한다면
증오에 대해 나도 알만큼 아는지라
파멸을 위해선 얼음 역시
아주 쓸모 있고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1874-1963)

img-poems01미국 시인. 20세기초 뉴잉글랜드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자연과 시골의 삶을 자연주의자의 눈으로 노래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평이한 일상어에 깊은 삶의 철학을 담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미국의 국민시인이라 할 만합니다. J.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의 시를 낭송하였고, 퓰리처상도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였으나 10세 때 아버지를 잃고 뉴잉글랜드로 이주하여 오랫동안 버몬트의 농장에서 살았습니다. 교사와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1912년 영국으로 건너간 뒤 시인으로서의 길을 시작하였습니다. 첫 시집 《소년의 의지 A Boy’s Will》(1913)와 두 번째 시집 《보스턴의 북쪽 North of Boston》(1914)이 영국에서 먼저 출판되었습니다. 1915년에 귀국한 뒤 미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어《산의 골짜기 Mountain Interval》, 그 후 《뉴햄프셔 New Hampshire》(1923),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1928), 《표지(標識)의 나무》(1942) 등의 시집을 내었습니다. 마지막 시집은 1962년에 낸《개척지에서 In the Clearing》입니다.


 

[일요 영시 해설] Robert Frost: “Fire and Ice” 

사람들은 주로 자신과 가족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바깥 세상일도 언제나 자기와 가족의 삶과 관련된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좀 넓은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민족이나 인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나 연구합니다. 그보다 더 넓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류뿐만 아니라 생명계 전체를 생각하고 지구의 운명 전체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걱정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요즘 생태계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주 넓고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명계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결국은 보통 사람 개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줄이자, 물을 아끼자, 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고통을 당할 것이며 결국은 생명계의 에너지를 다 써 버려 인류는 멸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와 관련하여 인간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마음가짐 문제로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가짐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원만하고 화목하게 만들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갈등과 싸움이 빚어지게 하여 사는 일을 고달프고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물질적 삶에서 자원을 너무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고 정신적 삶에서도 감정을 너무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는 사람 사이에도 말싸움, 칼부림이 나고, 심지어는 민족 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도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 간의 마음씀이 결국은 다른 생명체와 무생물을 대하는 방식에도 전이되어 그것들을 함부로 다루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바르지 않은 마음가짐은 이래저래 인간의 파멸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img-poem02
“대홍수(The Great Flood)”, 구스타프 도레(Gutav Doré)의 판화

프로스트는 사람들의 마음씀에 걱정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타락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삶이 끝장나고 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끝장나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래 생각하면 불로 망할 것 같고, 저래 생각하면 얼음으로 망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 자체는 알고 보면 크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도 그 비슷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인간 멸망과 부활의 역사관입니다. 인간은 낙원에서 살고 있었지만 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고생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저주를 받고 낙원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지식 나무 열매를 먹은 덕분에 인간은 세상일에 대해 지식을 갖게 되고 기술을 만들어내어 문명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은 타락하여 탐욕 속에 온갖 못된 짓을 하며 삽니다. 신은 이 못된 인간을 멸망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초기 역사에서 인간을 한 차례 멸망시키는데 이때 동원한 방법이 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인간은 또 정신을 못 차리고 끝없는 타락에 빠집니다. 신은 이들을 다시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엔 불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보내 경고를 보내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줍니다. 대충 이런 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인데 이때 인류를 심판하는 수단이 물과 불인 것입니다. 물과 불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물질 현상으로 그것 없이는 삶을 영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르게 사용하면 한없이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인류를 끝장내는 엄청난 징벌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물과 불은 그 성질과 기능 때문에 상징적 의미도 가집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이고, 불은 더러운 것을 태워버리는 기능을 가집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물과 불은 정화(淨化)를 상징하는 것들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프로스트는 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얼음”은 물의 한 변용이니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프로스트가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든 것은 desire와 hate입니다. desire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탐욕일 것입니다. 인간 삶의 모든 사달은 탐욕에서 비롯합니다. 이건 불교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욕망을 거두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것으로 보아 불교도 인간의 모든 사단이 욕심에서 비롯한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적 욕망도 포함하고 지배의 욕망도 포함합니다. 욕심이 많아지면 더 많이 가지려 하게 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탐욕을 가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욕망은 흔히 뜨거운 것에 비유됩니다. 욕망 또는 passion이 생기면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말에 열정, 정열, 열망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들이 다 뜨겁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뜨거운” 타락에 대한 징벌 수단은 불이어야 적절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뜨거운 탐욕을 더 뜨거운 불로 다 태워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탐욕과 관계되어 있고, 탐욕에서 비롯했을 수 있는 인간의 또 하나의 타락한 마음 씀이는 프로스트가 보기에 미워하는 일, 곧 증오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찬바람이 쌩쌩 돕니다. 미움의 감정은 차가운 감정입니다. 우리말에 마음이 차다, 냉정하다, 냉혹하다, 등등의 말은 다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나타내는 체온의 상태를 언급하는 말일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감정은 결국 싸움을 낳고, 심하면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합니다. 이 찬바람나는 증오에 대해서는 어떤 징벌이 좋을까요. 프로스트는 얼음을 제시합니다. 얼음으로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멸망시킴으로써 차가운 감정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탐욕과 증오로 인한 인간 멸망에 대한 예감은 프로스트가 1923년 이 시를 쓰기 몇 년 전에 세계1차대전(1914-1918)을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나오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시를 썼을 당시 프로스트는 하바드 대학교에 객원시인 비슷한 자격으로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수 파티에서 프로스트가 한 천문학 교수를 한쪽으로 끌고 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일화는 그 천문학 교수가 나중에 어느 강연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 “샤플리 교수, 당신은 천문학에 대해 모르는 게 없지 않습니까.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끝장나지요?” 이 천문학 교수는 그 물음이 너무나 엉뚱하여 농담이려니 하고서는 대답은 않고 딴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프로스트가 또 샤플리 교수를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답변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지구는 연소되어 끝장나거나 아니면 빙하기가 다시 닥치어 모든 생명체가 서서히 얼어죽게 될 것이다.”라고 과학자의 입장에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는 불로 망하거나 얼음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불로 망한다는 것이 혜성 충돌로 인한 것인지, 핵전쟁에 의한 것인지, 온실효과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여간 기온이 올라가거나 하강하여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불이나 물, 혹은 불이나 얼음에 의한 멸망은 단순히 시인이나 종교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상징만이 아닌 것입니다. (스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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