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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습니다. 좀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한다는 도박사이트에서는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를 상위권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한국 시인 고은도 몇 년째 물망에 올랐지만 순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밥 딜런이 수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선정의원회의 이번 결정이 놀라운 것은 밥 딜런이 ‘본격문학인’으로 알려져 있기보다 ‘대중음악인’으로 더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보기에 밥 딜런은 높이 평가받은 문학 장르의 저작을 낸 문학계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스코틀랜드 작가 어빈 웰시(Irvine Welsh)는 트위터에 “나는 밥 딜런 팬이지만 이번 수상은 노망 나 헛소리나 씨부렁거리는 히피들의 썩은 전립선이 향수에 쩔어 주는 상이다.”는 악담을 퍼부었고, 미국의 프로야구투수였던 롭 델러니(Rob Delaney)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다음 번엔 데렉 지터(미국 야구선수)가 필라프 요리로 토니상을 타겠네?” 하고 비꼬았습니다. 이런 반응은 올해의 수상자 선정이 문학과 음악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데 대한 불만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은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이번 결정이 보여 준 문학 개념의 확장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Sir Ahmed Salman Rushdie)는 “오르페우스부터 페이즈까지, 노래와 시는 항상 가까이 연결돼 있었다. 밥 딜런은 옛 음유시인의 뛰어난 후계자다. 훌륭한 선택.”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소설가 테러파이 잉(Terrify NG)은 “작가들이 화를 내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문학’을 넓게 해석하는 데 찬성한다. 게다가 딜런의 가사는 최고 아닌가.” 라고 했습니다. 사실 노벨문학상이 지금까지 시나 소설, 희곡을 쓴 문학가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드물지만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가의 저술에도 주어진 적이 있습니다.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문학의 의미와 기능을 다시 해석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결정은 노래와 문학의 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원래 말과 음악이 결합되어 있는 노래에서 출발했고,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이야기를 읊었던 가인(歌人)들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악기의 연주는 음악 영역으로 발전하고, 말로 읊어지던 것은 글로 쓰여지는 시와 이야기가 되어 문학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노랫말을 짓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던 일이 서로 다른 영역의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문학은 주로 식자층이 향유하는 문화가 되고, 그것의 원조였던 노래는 주로 대중을 위한 문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번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그동안 잊혀져 있던 가인의 기억을 되살리고 노래에 문학의 원조로서의 지위와 그것이 갖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되찾아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노랫말을 짓고, 거기에 곡을 붙이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온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은 전통적인 의미의 가인이자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습니다. 노벨의 유지에 따라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해 낸 사람”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상을 대중을 상대로 노랫말을 지어온 대중 가인에게 주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질문을 할 수는 있습니다. 노래를 문학 범주에 넣어준다 하더라도 밥 딜런이 과연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산했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먼저 “이상적인 방향”이란 무엇이며, “뛰어난 작품”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과 합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음악과 본격문학을 단순 비교하여 어느 것이 우리 삶을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문화적 생산물이 더 뛰어난가, 에 대한 판단도 우리 삶의 이상적인 방향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 판단 역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간 밥 딜런의 노래와 그의 활동이 세계인의 마음과 정신에 어느 문학인의 작품에 못지 않게 깊고 넓은 울림을 주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의 원래 이름은 로버트 앨런 짐머만(Robert Allen Zimmerman)이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영국의 웨일즈 출신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이름을 따서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신낭만주의적 경향의 시를 쓴 딜런 토머스는 시 낭송이 뛰어나고 음주와 기행으로 유명했는데 짐머만이 아직 청소년이던 시절, 시 낭독 투어 중에 뉴욕에서 음주와 과로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밥 딜런이 왜 딜런 토머스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img-bobdylan_guitar밥 딜런은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포크 계열의 노래를 불러 60년대에 대중문화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6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는 억압적인 기성문화와 물질주의 문명의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 음악의 장식성을 절제하면서 읊조리듯, 웅얼거리듯 부르는 그의 노래는 메시지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음악성보다 문학성이 더 강하게 여겨집니다. 그에게 가수의 이미지보다 음유시인의 이미지가 더 큰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의 문학성은 거꾸로 음악성에도 반향하여 새로운 차원의 개성적인 음악성을 창조해내는 효과를 내었습니다. 그의 시적인 노랫말과 반전통적인 독특한 노래 방식, 그리고 그의 노래가 담고 있는 민중성은 60년대의 사회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가 만들어 낸 노래 중에는 세계인의 마음을 깊게 흔들어 놓은 노래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바람만이 알고 있어(Blowin’ in the Wind)“(1962), “시대는 변하는 중(The Times They Are A-Changin)”(1964),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Knockin’ on Heaven’s Door)”(1973)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들로 대중 음악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노래들입니다.

밥 딜런은 저항 음악가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조운 바에즈(Joan Baez)처럼 정치문화적 운동에 꾸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75세가 된 지금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 그는 투쟁가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가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60년대 초에 그는 늘 저항문화의 선봉에 있었지만 얼마 뒤에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에 사로잡히는 일에도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보다도 “나”를 표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악기 사용과 음악의 장르에서도 변화를 보여 1965년에는 통기타만을 고집하고 않고 전자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포크 락 역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도 그는 끊임없는 변신을 꾀해 이제 그를 어떤 한 마디 말로 규정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예술가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 주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밥 딜런의 인간적 개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세속적 가치와 평판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노벨상 수상 소감을 물었을 때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가 노벨상을 수락할 것인지도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스완송)

* 아래에 가장 널리 알려진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의 노랫말과 그 번역을 싣습니다.

Blowin’ in the Wind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How many years must a mountain exist
Before it’s washed to the sea?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그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 건너야
비둘기는 모래땅에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날아야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대답은 친구여, 바람만이 안다네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산이 씻겨 바다로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사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얼마나 여러 번 고개를 돌려
사람이 못본 척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친구여, 바람만이 안다네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얼마나 더 많이 올려다보아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이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세상의 울음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은 죽음을 깨닫게 될까
대답은 친구여, 바람만이 안다네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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