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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Movement

Carl Sandburg

I cried over beautiful things knowing no beautiful thing lasts.

The field of cornflower yellow is a scarf at the neck of the copper sunburned woman, the mother of the year, the taker of seeds.

The northwest wind comes and the yellow is torn full of holes, new beautiful things come in the first spit of snow on the northwest wind, and the old things go, not one lasts.

 

가을 움직임

칼 샌드버그

아름다운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아름다운 것들에 울었습니다

노란 수레국화 빛 들판은 구리빛으로 그을른 여인의 목에 두른 스카프, 한 해의 어머니, 씨앗을 받는 자

북서풍이 오고 노란색은 수많은 구멍을 남기며 찢깁니다, 새로운 아름다운 것들이 북서풍을 타고 훌훌 떨어지는 첫눈과 함께 옵니다, 오래된 것은 가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칼 샌드버그 Carl Sandburg (1878-1967)

carl_sandburg미국 시인, 작가, 편집가. 일리노이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3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우유 배달, 벽돌공, 농장 잡역부, 호텔 종업원, 석탄 운반부 등 여러 일에 종사하며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신문기자 일을 하기도 하고 에스파나-아메리카 전쟁에 종군하기도 했습니다. 롬바드대학에 다녔으나 학위는 받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14년에 한 문예지에 발표한 “시카고 Chicago”라는 제목의 시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산업도시 시카고를 묘사한 이 시는 부두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들이 쓰는 속어나 비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1916년에는 《시카고 시집 Chicago Poems》을 내어 시카고의 중요 시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하고, 뒤이어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사람 Cornhuskers》(1918), 《연기와 강철 Smoke and Steel》(1920) 등의 시집을 냅니다. 아동을 위한 동화책 《 루터배거 이야기 Rootabaga Stories》 (1922)도 쓰고, 미국 여러 지방의 민요와 전설을 모아 《아메리카 민요집 The American Songbag》(1927)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두 번의 퓰리쳐 상을 받았고, 링컨에 대한 방대한 전기를 써내어 퓰리처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일요 영시 해설] Carl Sandburg: “Autumn Movement”

“Autumn Movement”는 자연의 변화와 덧없음을 노래하는 3행의 짧은 산문시입니다. 짧지만 아름답고 강력합니다. 제목에 들어 있는 Movement라는 말은 가을에 느끼게 되는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든 계절과 시간이 나름의 변화를 가지지만 그 변화와 움직임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 주는 계절은 가을입니다. 변화는 생성과 확장의 단계에서보다 쇠퇴와 소멸의 단계에서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완숙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쇠퇴의 계절입니다. 자연의 변화는 가을에 클라이맥스에서 앤티클라이맥스로 급전직하합니다. 그래서 이 계절은 아름답고 동시에 슬픕니다. 샌드버그는 이 짧은 시에서 그 변화에 대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슬픔이 절망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덧없음과 자연의 변화는 쇠퇴와 상실에서 그치지 않고 그 변화와 함께 새로운 것들을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I cried over beautiful things knowing no beautiful thing lasts.

이 첫 문장은 직설적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다루었던 주제를 아주 간명한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슬프다는 것입니다. 샌드버그의 이 표현은 다른 시인들의 표현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 보편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수사적 장식을 동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강력하게 느껴집니다. I cried over beautiful things라는 직설적 표현에서 울컥한 느낌을 갖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The field of cornflower yellow is a scarf at the neck of the copper sunburned woman, the mother of the year, the taker of seeds.

2행은 가을의 풍경을 인상적인 메타포로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자연에서 갖는 역할을 말합니다. cornflower는 미국 북부에서는 주로 푸른색의 수레국화를 뜻하지만 남쪽에서는 노란색의 수레국화를 뜻한다고 합니다. The field of cornflower yellow는 곡식이 누렇게 익은 들판을 말하는 듯합니다. 구릿빛으로 그을른 여인은 가을의 갈색 대지를 가리킵니다. 가을의 갈색 들판 위로 띠처럼 길게 뻗은 노란 밭이 마치 구릿빛으로 그을른 여인의 목에 두른 노란 스카프처럼 보입니다. 강렬한 시각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the mother of the year는 가을 대지를 비유로 표현한 메타포입니다. 샌드버그는 가을 대지를 한 해의, 혹은 사계절의 어머니라고 봅니다. 어머니의 비유는 앞의 woman의 비유가 연장된 것입니다. 사계절 혹은 한 해(the year)의 어머니는 “씨앗을 받는 자(the taker of seeds)”이기도 합니다. 가을의 대지는 한 해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앗을 다시 품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앞의 스카프를 두른 여인의 이미지가 어머니의 이미지, 씨를 받는 자의 이미지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 씨앗을 품는 존재입니다. 샌드버그는 이 한 줄을 통해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가을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이미지를 연장하여 가을이 자연에서 갖는 기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The northwest wind comes and the yellow is torn full of holes, new beautiful things come in the first spit of snow on the northwest wind, and the old things go, not one lasts.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옵니다. 북서풍이 불어오고 노란 들판은 사방에 숭숭 구멍이 뚫리면서 찢깁니다. 이것은 들판에서 곡식이 거둬들여지고 난 뒤의 풍경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새로운 아름다운 것들이 북서풍을 타고 훌훌 떨어지는 첫눈과 함께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만 겨울의 아름다움이 오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오래 된 것은 사라집니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변화하고 새로운 것들로 바뀔 뿐입니다. 사랑했던 아름다운 것들을 잃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운 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를 떠올리게 합니다. 셸리는 가을의 서풍이 낡고 병든 것을 휩쓸어 가 버리고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 준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서풍부”의 마지막 행,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셸리가 늦가을에 기대하였던 것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었습니다. 그에게 겨울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져다 줄 봄이 오기 전의 전환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샌드버그에게 겨울은 그냥 봄이 오기 전의 전환기만은 아닙니다. 겨울은 겨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진 계절입니다. 샌드버그는 모든 계절의 아름다움을 압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변화와 상실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만 자연은 또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변화와 움직임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자연과 시간은 생명에 죽음을 가져다 주지만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생성해 냅니다. 시인은 이러한 삶에 슬픔을 느끼면서 동시에 위로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실의 슬픔이 두드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스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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