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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일요일"

 

When Edward Hopper Was Painting

E. Ward Herlands

I like to think that on a Sunday afternoon when Edward Hopper was painting his lone man seated on a street curb, with shaft of light warming that man’s right arm & right cheek, I like to think that on that very same day I was there, somewhere round that corner, dressed in a Wedgewood-blue velvet-collared English wool coat, (incongruous elegance for a workingman’s child) offspring of a proud Austro-Hungarian immigrant & a first generation American. I like to believe that in the minutes just after the seated man arose from his head-bowed position, that my father came strolling down the very same street pushing me in my grey straw perambulator & when his path & ours were parallel & as that man approached, I like to think that the lone man in the Hopper painting looked down at me, smiled & said, Nice kid you’ve got there, Dad.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을 그릴 때

E. 워드 헐랜즈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느 일요일 오후 에드워드 호퍼가 길가 연석 위에 앉아 있는 외로운 사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때 햇살이 사내의 오른팔과 오른쪽 뺨에 따뜻하게 비추고 있던 바로 그날 나도 그곳에 있었노라고, 길모퉁이 저쪽 어딘가에 연푸른 벨벳 깃의 영국제 모직 웃옷(노동자 자식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우아한)을 입은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의 자랑스러운 이민자이자 첫 세대 미국인의 후손이 말이다.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던 사내가 그 자리에서 일어선 뒤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나를 회색 밀짚 유모차에 태워 밀면서 바로 그 거리를 내려오고 있었다고, 그리고 사내와 우리가 가던 길이 나란히 되자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그리고 호퍼 그림의 그 외로운 사내는 나를 내려다보고 싱긋 웃으며 아버지에게 아이가 참 귀엽군요, 하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고 싶다.


 

E. 워드 헐랜즈 (E. Ward Herlands, 1925)

미국 시인, 판화제작자.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코네티컷 대학 교수. 주로 산문시를 씁니다. 다음과 같은 문학선집에 작품이 실렸습니다. Literature: Reading Fiction, Poetry, Drama and the Essay (McGraw-Hill, 2000), Poetry, an Introduction (McGraw-Hill, 2000), Reading Fiction, Poetry, Drama & the Essay (McGraw-Hill, 1998), Long River Run (Connecticut Poetry Society, 1994)

 


 

[일요 영시 해설] E. Ward Herlands: “When Edward Hopper Was Painting”

오늘 읽을 시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그린 “일요일 Sunday”(1926)”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소재로 한 시입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뉴욕 태생의 화가로 도시인의 고독한 삶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는 그림도 호퍼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넓고 텅 빈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소외되거나 고독한 사람이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시인이 그림을 시의 소재로 삼는 것은 일단 화가가 본 세상 혹은 삶의 관점에 공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헐랜즈는 호퍼가 본 어느 일요일의 뉴욕 거리 풍경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 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쓴 앤 섹스턴(Ann Sexton)은 고흐가 본 밤풍경에 공감하고, [미술박물관]을 쓴 오든(W. H. Auden)은 브뤼헐이 본 신화적 풍경에 공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시는 대체로 그림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그림이 주는 느낌을 언어화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때 그림과 시는 거의 등가물입니다. 시는 speaking picture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시인이 그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쓸 때 그는 그림 내용을 바로 현실 세계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실주의적인 그림일 경우에 그렇습니다. 헐랜즈의 이 시는 후자의 경우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호퍼의 그림을 하나의 현실의 장소처럼 생각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그 속에 있었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림의 소재를 현실로 보고자 하기 이전에 그 현실을 본 화가의 눈에 공감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퍼의 “일요일”이라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살펴봅시다. 어느 일요일 오후 뉴욕의 길거리 연석에 한 사내가 구부정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날이 일요일인 것은 그림의 제목이 “일요일”인 데서도 알 수 있지만 대도시 뉴욕이 통행인이 없이 한적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사내의 등 뒤 건물은, 큰 윈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상점으로 보이는데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지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오른쪽 상점의 윈도에는 차양이 내려 있기도 합니다. 이 시간이 오후인 것은 광선이 비껴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도 묘사되어 있듯이 사내의 오른팔과 오른쪽 뺨에 햇살이 비치고 있습니다. 햇살이 전체적으로 누르끄름한 것으로 보아 오후 햇살입니다. 오버롤 작업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사내는 노동자로 보입니다. 다른 날에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쁘겠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라 이처럼 앉아 있습니다. 이 노동자는 외로운 사람으로 보입니다. 같이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일요일인데도 가족과 함께 있지도 않고 어딘가로 놀러 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습니다. 한적한 거리와 넓고 텅 빈 거리 배경이 이 사내의 외로움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사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헐랜즈는 이 그림을 보고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요? 그녀는 그림의 사내가 뉴욕의 한적한 길가에 앉아 있는 바로 그 날 자신도 거기에 있었을 수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가정을 시인은 즐겁게 해 보는데(I like to think that . . .) 이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때 그 날, 외로운 사내가 길거리에 앉았던 그때 그 날 그 거리에 자신도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랬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상상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사내가 길거리에 앉아 있던 그 시간에 시인은 바로 길모퉁이 저쪽에서 오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때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녀는 유모차에 실려 있었고 아버지가 유모차를 밀면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유모차 속의 아이는 일요일이라 고운 옷으로 차려 입은 듯합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길모통이를 돌아 사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때 길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사내가 문득 일어나 걸음을 옮깁니다. 사내와 유모차를 밀고 가던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가게 되는 순간이 됩니다. 유모차를 본 사내가 유모차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는 유모차 안에 앉아 있는 어린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으며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되시나요? 아이가 참 귀엽군요.”

호퍼의 이 그림은 192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헐랜즈는 1925년에 태어났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졌을 때 헐랜즈는 한 살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시인이 뉴욕에 살고 있었다면 실제로 시인은 호퍼가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 거리를 유모차에 실려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이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호퍼가 그 그림을 그렸을 당시, 그리고 외로운 사내가 길거리에 앉아 있던 그때, 그 당시의 삶의 공간과 시간을 시인이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시인은 그림의 사내가 자기의 이웃이었고, 그를 만났을 수도 있다고(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인에게 왜 그러한 생각은 즐거운 일이고 중요한 일일까요. 우선은 그 그림이 자기가 살았던 삶의 공간과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내가 실제로 살던 시대의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본다면 우리도 같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여기 바로 이 골목을 돌아가면 우리집이 있고 이쪽에는 중국집이 있고 거기에는 뚱뚱한 아저씨가 주인이었는데. 그 옆집엔 잘생긴 남학생이 살았고 . . . 등등). 또 하나는 그 그림이 보여주는 삶의 성격과 분위기를 잘 알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은 이 사내의 외로움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사내는 시인의 집안처럼 이민자였을 것입니다.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이니까요. 뉴욕은 이민지의 노동으로 세워진 도시입니다. 이민자는 고향을 떠나온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도시이므로 고향에서처럼 서로간에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외로움을 극복하고 일을 하여 도시를 건설했고, 자식들을 낳아 길렀고, 오늘의 도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림 속의 사내는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외롭지만 정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유모차에 다가와 아이를 귀엽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 유모차를 타고 나왔을 때 누군가 자기를 향해 미소 지어준 사람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혹 이 그림 속의 사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시인에게 그 점은 중요합니다. 시인의 현재, 지금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오늘을 형성해 준 것은 그림 속의 고독한 사내의 노동과 그의 따뜻한 미소 같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헐랜즈는 호퍼의 그림에서 동시대적 삶의 공간과 시간을 느낍니다. 그와 동시에 그 그림 속에 배어들어 있는 이민자의 삶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그 삶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준 힘, 고독과 노동과 그것을 견디게 하는 인간적인 다정함을 이 그림에서 느낍니다. 오스트리아 계통의 헝가리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그녀는 그녀의 현재를 있게 한 그것들의 힘과 긍지를 호퍼의 이 그림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 시는 산문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산문과 시라는 개념의 합성은 모순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poetry라는 말은 반드시 정형적인 운문(verse)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비정형적인 free verse, 심지어는 prose 형식까지, 거기에 시적인 본질이 들어 있다면 다 poetry에 포함시킵니다. 시적인 것의 본질이 무엇이냐, 는 것은 또 답변하기 힘듭니다(정의하기가 힘들어 ‘시라는 것은 시집에 실린 글을 말한다’ 고 정의하는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농담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산문시에도 내재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산문시가 아닌 그냥 산문에도, 잘 쓴 산문이라면 호흡에 잘맞는 리듬이 있게 마련이지만 산문시는 그 내재적 리듬이 더 음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재율은 영어의 경우 스트레스의 일정한 반복에서 발생하고, 한국어의 경우 규칙적인 음절수 패턴의 반복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의미의 차원과도 관련을 가집니다. 의미와 소리의 리듬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호흡에 맞는 패턴을 가지면 내재율이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호흡을 맞추기 위해 정상적인 통사적 구조를 무시한 곳이 여러 곳 눈에 띕니다. 그리고 이 시의 산문시적 형식은 호퍼의 그림처럼 도시 배경의 건조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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