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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이나 ‘오지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것이 유럽의 나라 이름이라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이라는 나라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니까요. 나라 이름들의 우리식 명칭의 유래를 돌아보면 흥미롭습니다.

서양 여러 나라 이름의 우리식 명칭이 한자의 음역에서 나왔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공식 문자는 한자였기 때문에 외래어나 외국어의 한글 표기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자로 음역한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음역한 명칭들이 없지는 않으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음역한 것을 그대로 빌려와 우리식으로 읽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서양 문명에 관한 지식이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영국이라는 말은 England를 한자로 음역한 데서 비롯하였습니다. England의 원래 음역은 ‘영란(英蘭)’이었습니다. 이 한자를 우리는 ‘영란’으로 읽지만 중국어 발음으로는 ‘잉글랜드’에 가깝게 들립니다. 나라 이름 끝에 land가 들어간 나라 이름은 모두 ‘란(蘭)’으로 음역했습니다. ‘영란’이 ‘영국’이 된 것은 ‘영란’의 첫 자와 국가를 나타내는 ‘국’자를 합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단어의 첫 글자만을 조합하는 축약어들이 유행하는데 ‘영국’이라는 명칭도 ‘영’이라는 첫 글자와 나라를 뜻하는 ‘국’ 자로 축약한 것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영국을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영국으로 부르고 있는 나라의 정식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en Ireland이고 줄여 말해도 the United Kingdom이기 때문입니다. 직역하면 ‘연합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합왕국이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라는 네 나라가 연합한 왕국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잉글랜드가 그 가운데 가장 힘센 나라이기는 하지만 네 나라 가운데 하나의 나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연합왕국을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분개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지어진 방식도 비슷합니다. 원래의 중국식 명칭은 ‘아미리가대합중국(亞美理駕大合衆國)’이었고 약칭은 ‘미국(美國)’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아미리가합중국(亞米利加合衆國)’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미국(米國)’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쪽 음역을 따르는 셈입니다.

독일은 일본의 음역을 따른 경우입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 모두 Deutschland라는 말에서 land 부분을 빼고 각각 ‘德意志’, ‘獨逸’이라고 음역했는데 둘 다 ‘도이치’라는 발음에 가깝습니다. 중국에서는 관습대로 ‘德國’이라고 줄여 불렀는데 우리의 경우 처음에는 중국식 약칭을 받아들여 ‘덕국’이란 말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일본식 음역을 받아들이고 우리식으로 읽어 ‘독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濠洲)라고 부릅니다. ‘호주’는 일본식 한자 음역인 ‘濠斯太剌利亞’를 우리식으로 ‘호사태랄리아’라고 읽은 데서 유래합니다. 첫 글자인 ‘호’ 자를 따고 대륙이나 섬을 나타내는 ‘주(洲)’ 자를 사용하여 ‘호주’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음역은 ‘奧大利亞(오대리아)’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잘못 알고 ‘호주댁(濠洲宅)’이라고 부른 일이 있습니다. 유럽의 오스트리아는 ‘오지리(墺地利)’라고 음역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 되기 이전에 한자를 문어로 사용했던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의 이름을 중국이나 일본이 한자로 음역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을 여행했던 유길준의 여행기 [서유견문(西遊見聞)]을 보면 조선 후기에 우리가 사용했던 유럽 여러 나라의 이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자로 음역된 명칭들이 최근까지 사용되어 오다가 30여 년 전부터 원음 표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한글 원음 표기 방식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원음 표기가 각 나라 이름의 원음을 따른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어 명칭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Eire는 ‘에이레’가 아니라 영어식으로 아일랜드가 되고 España도 ‘에스파냐’가 아니라 영어식으로 ‘스페인’이 된 것입니다. 영어식 명칭이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기 전에 사용되었던 명칭 가운데에는 나라 이름의 원음을 한자로 음역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네델란드는 이 나라의 별칭이었던 Holland를 음역하여 ‘화란(和蘭)’이었고 스페인은 España를 음역하여 ‘서반아(西班牙)’였습니다. 이제 영국, 미국, 독일, 호주 등 몇 나라 명칭만 남기고 대부분 영어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예전의 한자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 대학의 학과 명칭은 아직도 서반아어문학과, 노문학과, 불문학과 등의 옛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그밖의 유럽 중요 나라의 이름을 적어 봅니다. 50대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마 이 명칭들이 귀에 익을 것입니다.

Europe 유럽 → 구라파(歐羅巴)
Ireland 아일랜드 → 애란(愛蘭)
France 프랑스 → 불란서(佛蘭西)
Denmark 덴마크 → 정말(丁抹)
Italy 이탈리아 → 이태리(伊太利)
Portugal 포르투갈 → 포도아 (葡萄牙)
Swiss 스위스 → 서서(瑞西)
Austria 오스트리아 → 오지리(墺地利)
Poland 폴란드 → 파란(波蘭)
Greece 그리스 → 희랍 (希臘)
Finland 핀란드 → 분란(芬蘭)
Norway 노르웨이 → 나위(那威)
Sweden 스웨덴 → 서전(瑞典)
Russia 러시아 → 노서아(露西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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