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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맥주집을 흔히 ‘호프집’이라 부릅니다. 원래는 생맥주를 파는 술집을 말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생맥주건 병맥주건 맥주를 파는 집에는 가리지 않고 호프집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호프집은 누구나 가벼운 주머니로도 들를 수 있는 술집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어떤 호프집에서는 소주를 함께 팔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호프집’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두 겹의 혼란: 독일어와 영어의 혼동, 외래어 표기법의 혼란

‘호프’라는 말은 독일어 hof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이 맥주 원료인 hop에서 유래했으리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맥주 원료를 가리키는 hop이란 말은 영어입니다. 독일어와 영어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외래어 표기법의 혼란도 한몫 하고 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hof는 ‘호프’로 적어야 맞고 hop는 ‘홉’으로 적어야 맞습니다. 이러한 규칙을 잘 모르고 사람들이 호프집의 ‘호프’를 맥주 원료 hop의 표기로 잘못 짐작한 데서 혼란이 커진 것입니다.

‘호프집’의 유래: OB호프

호프집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정확하게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신문을 검색해보면 1986년 11월 5일에 OB맥주가 서울의 동숭동 대학로에 ‘OB호프’라는 이름의 생맥주 체인점을 열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 효시라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OB호프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그 체인점이 전국에 엄청난 수로 늘어났습니다. 그 뒤로는 생맥주집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호프’라는 말의 유래: 호프브로이(Hofbräu)

호프브로이하우스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HB)

한국에서 ‘호프’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이 말을 독일어 ‘호프브로이(Hofbräu)’나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독일어 ‘호프(hof)’는 궁의 안마당, 또는 안마당이 있는 저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영어의 court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브로이(bräu)는 양조장을 뜻합니다. 그래서 호프브로이는 ‘궁정 양조장’이 됩니다. 독일의 양조회사에 이런 이름이 붙은 곳들이 꽤 있습니다. 안마당을 뜻하는 호프라는 말이 맥주나 양조장과 관련되어 쓰이게 된 연유는 독일의 맥주 역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왕실에 맥주를 공급하는 양조장이나 왕실 소유의 양조장을 호프브로이(궁정양조장)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호프브로이라는 이름이 붙은 맥주 양조회사는 한때 궁에 맥주를 공급했던 양조장들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뮌헨에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입니다. 이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양조장 이름이기도 하지만 맥주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늘 들끓는 뮌헨 중심가의 세계 최대의 맥주집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생맥주집에 호프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아마도 세계 최대의 맥주집인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그 이름을 따왔으리라 짐작됩니다. 독일어 호프가 가진 궁정의 이미지가 조그만 염가 생맥주집에 걸맞지는 않습니다. 구멍가게를 ‘슈퍼’라 부르고 아파트를 ‘맨션’이라 부르는 우리식의 과장법인 셈입니다.

독일어 호프(hof)가 맥주와 관련된 것은 이 경우밖에는 없습니다. 맥주 원료인 홉(hop)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맥주 원료 홉을 뜻하는 독일어는 ‘홉펀(hopfen)’입니다.

홉(hops): 맥주의 원료

‘홉’은 맥주의 중요한 원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홉 성분은 맥주의 쓴 맛을 내는 데 주된 용도가 있지만 잡균의 번식을 막아 저장성을 높여주기도 하고 맛과 향을 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8세기 경부터 맥주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4세기 경부터 맥주 원료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홉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뽕나무과의 다년생 덩굴 식물의 암꽃을 말합니다. 이 덩굴 식물은 암수가 따로 자랍니다. 암꽃은 솔방울 모양인데 성숙하면 꽃 안에 루풀린(lupulin)이라는 노란 알갱이 모양의 성분이 생깁니다. 이 성분이 맥주의 쓴맛을 냅니다. 우리는 이 덩굴 식물과 그 암꽃들을 모두 홉이라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단수와 복수 형태로 구분합니다. 덩굴 식물 이름은 hop이라 하고 맥주 원료인 암꽃들은 hops라 합니다.

홉은 봄마다 덩굴이 왕성하게 자라 덩굴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계방향으로 감쌉니다. 15미터까지 자라기도 하는데 홉 농장에서는 보통 4~9미터까지 기릅니다. 홉 암꽃들은 보통 늦여름에 수확합니다.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홉 농장에서 농장 일꾼들이 홉을 따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홉은 수확하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나면 곧 썩기 시작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말려야 합니다. 보통은 건조 가마에 넣고 홉들을 통째로 말립니다. 맥주의 원료로서 ‘홉’이라고 할 때는 주로 이 말린 암꽃들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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