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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의 대표적인 화제의 하나는 자기 아이가 몇 살 때부터 글을 읽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글을 빨리 깨우치면 뿌듯한 자랑거리가 됩니다. 글을 깨치는 것은 세상 지식을 혼자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니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먹여 주던 밥을 아이가 스스로 먹게 되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라도 빨리 글을 읽을 수 있으면 그만큼 더 똑똑한 것이고 그만큼 세상일에 앞설 수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그래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가르치는 교육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글을 빨리 깨치고 일찍부터 책을 읽는 것이 똑똑한 아이의 징표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 유리할까요?


글을 빨리 깨친 아이가 똑똑하다는 잘못된 믿음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만 1세 이하의 26.7%, 만 4세 아이의 44%, 유치원에 들어가는 만 5세 아이의 76%가 한글, 영어 등 문자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글을 빨리 깨치는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두 돌밖에 안 된 아이가 한글을 배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거나 네 살밖에 안 되는 아이가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또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남의 아이들에게 뒤떨어질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영유아 교육 학원들은 조기 독서 능력이 미래의 성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면서 부모들의 조바심과 경쟁심을 이용하여 이들을 유인합니다. 많은 부모가 너도나도 어린아이들을 ‘독서 영재’로 만드는 일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이른 시기에 글을 깨치는 능력을 영재성의 징표로 보는 것은 잘못일 뿐만 아니라 취학 전에 글을 가르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린 시기에 글을 가르쳐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게 하는 것은 뇌 발달에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글 읽기를 빨리 배우는 것은 뇌의 발달에 해롭다

근년에 KBS와 EBS에서 영유아 언어 교육에 대한 연구 조사를 기획하고 제작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두 방송사는 국내외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해외의 다양한 교육 기관과 프로그램을 취재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이른 시기에 글을 가르치는 것은 뇌의 발달에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유아 문자 교육에 대한 두 방송사의 중요한 조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뇌 발육이 3세에 완성된다는 속설은 과학적은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뇌 회로는 6~7세에 이르러서야 자리를 잡고 뇌의 발달은 평생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7세 이전에는 뇌를 이루는 3층(각각 생명, 감성, 지능과 관계된 영역)이 차례대로 고루 발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특히 2층의 감성 뇌가 충분히 발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성 뇌가 발달하여야 할 시기에 한글을 배운다든가 영어를 배운다든가 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지능 뇌를 주로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감성 뇌가 발달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고 뇌에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문자는 빨리 깨칠지 모르지만, 의사소통에 중요한 감정을 발달시킬 수 없으므로 진정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서와 감정에 장애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하면 정서 불안증과 유사 자폐증 같은 것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우수한 교육 방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핀란드에서 만 7세 이전의 글자 교육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고될 만합니다. 독일과 영국 등의 유럽 국가들과 미국, 이스라엘에서도 취학 전 문자 교육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참고] EBS 뉴스 “글자, 언제 배워야 효과적일까?”

하이퍼렉시아: 조기 교육과 과잉 독서의 결과

이른 시기에 글을 깨친 뒤 책을 많이 읽어 이른바 ‘독서 영재’라는 말을 듣는 아이들의 정서 상태와 이해력을 조사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상당수가 하이퍼렉시아(hyperlexia)라 불리는 과잉언어증(또는 초독서증)과 유사자폐증에 걸려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잉언어증은 2세에서 5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는데 두뇌가 미성숙한 아이가 글을 너무 많이 읽어서 뜻도 모르고 문자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겉보기에 영재처럼 보여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유사자폐(후천성 자폐)는 지나친 학습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가 낯선 것을 두려워하고 결국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유사자폐증의 하나로 ‘광범위성 발달 장애(pervasive development disorder, PDD)’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 손상에서 비롯하는 지능 및 운동 발달 장애, 언어 발달 장애, 시각 청각 등 촉수 감각 기능 발달 장애, 학습 장애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이 2012년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78개월(만 6세 반) 미만 어린이 53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정신 건강 상태 조사 결과도 놀랍습니다. 10명 중 3명이 고위험 수준의 언어 발달 장애, 정서 발달 장애, 사회성 발달 장애, 그리고 자폐증 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문자와 숫자 중심의 과도한 조기 교육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신성욱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15쪽.)

책 읽기는 ‘글 읽기’가 아니다

영유아 교육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 최고의 영유아 교육 방법으로서 책 읽기를 권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때의 책 읽기는 아이들이 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을 뜻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의 ‘책 읽기’란 말은 넓은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아이가 책의 그림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 그리고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주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이가 문자를 읽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의 그림을 통해 사물과 현상을 눈으로 익히고 그것들이 엮어내는 사건을 상상 속에서 경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읽기 활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책에 인쇄된 글의 내용과 부모가 덧붙이는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며 상황과 관련된 어휘를 습득하고 삶에 대해 배워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책 읽기는 뇌의 여러 부위를 고루 발달시켜 주는 영유아기의 중요한 교육 활동이 됩니다. 이러한 책 읽기를 강조하는 일을 아이에게 글을 깨우쳐 스스로 책을 읽도록 권장하는 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글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당장 가르칠 필요는 없다

어린아이도 때에 따라 글을 빨리 익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빨리 익힌 아이의 경우, 문자를 제대로 익혔다기보다 문자를 그림처럼 외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가 좋아하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생후 18개월부터 글자를 짚어가며 책을 읽어준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흉내를 내다 책의 내용을 외울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아이가 글자를 읽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25개월이 되자 이 아이는 그림책에 있는 문장들을 능숙하게 읽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을 읽느라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 아이는 결국 유사 자폐라는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글을 빨리 익히려다 보면 후천성 난독증에 걸릴 염려도 있습니다. 단어나 문장은 읽을 수 있지만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그 한 증상입니다. 한국 중고등학생 가운데 적절한 읽기 능력을 갖춘 학생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난독증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독해능력이 떨어진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있습니다. 이것이 조기 교육의 열풍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글은 언제 배우는 것이 좋을까

원론적은 대답은 아이들이 문자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만 4세에서 7세 사이가 그때입니다. 하지만 미국 터프츠대 교수이자 “읽기와 언어 연구 센터”의 책임자인 메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책 읽는 뇌]라는 저서에서 “만 6세 미만의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만 5세 무렵에 문장, 문단, 통사 구조를 익히는데 이 과정은 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모두 ‘소리’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문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생물학적 나이는 훨씬 그 뒤라고 하는군요. 만 6세 이전 아이들의 뇌는 문자라는 복잡한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생물학적인 시간표가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문법과 철자를 익히는 데 활용되는 좌뇌는 3세 이후에 발달하기 시작해 7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합니다. 감정과 관련된 영역인 우뇌는 6세부터 퇴보하기 시작하고요. 따라서 7세 이전에는 좌뇌를 키우는 문자 교육 대신 우뇌를 키우는 다양한 감각 자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한글은 만 7세가 되어서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시기가 가장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글자를 빨리 배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독해력과 학업 성취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만 5세 무렵에 글자를 익혀 책을 읽은 아이들과 만 7세 무렵부터 글자를 익힌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한 결과 글자를 일찍 배운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글자를 늦게 배우는 것이 학업 성취도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참고] 신성욱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125~127쪽.

어휘력을 늘려주는 대화가 7세 이전의 글 읽기를 대신할 수 있다

글자를 배워 책을 읽는 것이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빠른 방법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문자를 통해 본격적인 정보 획득이 가능해지는 12세 무렵 이전 아이의 어휘력은 책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향상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너무 일찍 글을 깨쳐 책에 몰두하게 되면 세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고 글만 읽은 채 책장을 넘기는 버릇이 붙어 그림 관찰에서 얻어지는 상상력을 제대로 향상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책을 읽기 때문에 책에 나오는 어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책의 이야기 전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셋째, 부모와 함께 책을 읽지 않게 되면서 부모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잃게 된다는 점입니다. 부모와의 대화가 줄어들면 실제 삶의 맥락과 관련된 폭넓은 어휘를 제대로 익힐 수 없게 됩니다.

아이가 문자를 배우는 일은 혼자서 책을 읽어도 될 만큼 어휘력을 충분히 기른 다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책 읽기를 통해 어휘력을 충분히 기른 다음이라면 글을 늦게 배운다 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훗날 비교해서 글을 빨리 배운 아이들에게 독서력에서 뒤떨어질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빨리 배움으로써 겪게 될지 모를 두뇌 발달 장애를 피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글은 배우기가 아주 쉽습니다. 지능 뇌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7세 전후라면 단기간에 한글을 익힐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해석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글을 익힌다는 것은 아이들이 소리로 기억하고 있는 어휘를 문자에 일치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음성 단어 어휘력이 충분한 아이는 한글을 늦게 배우더라도 자기 어휘력에 맞는 책들을 곧바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한글을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풍부한 음성 어휘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한글 교육 시기와 관련하여 읽기를 권하는 책

  • KBS 읽기혁명 제작팀 기획/신성욱. [뇌가 좋은 아이]. 마더북스, 2013.
  • 신성욱.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어크로스, 2014.
  • EBS <언어발달의 수수께끼> 제작팀. [언어발달의 수수께끼]. 지식너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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