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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de l'artiste au Christ jaune

 

제목을 중심으로 읽어 보는 세계문학: [달과 6펜스]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의 소설 가운데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1919)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히는 이색적인 소재의 소설입니다. 별일 없이 살던 한 중년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편안한 삶을 버리고 집을 나갑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속 깊은 곳의 갈망 때문입니다. 그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다 나중에는 태평양의 외딴 섬 타히티로 떠납니다. 그곳 원시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다 나중에는 나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죽으면서 그는 위대한 그림을 남깁니다. 화가 고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야기라 하지요. 예술과 이상의 꿈에 대한 갈망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의 제목에 끌려서 책을 사기도 합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멋있어 보입니다. 뭔지 모를 상징이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어보아도 제목의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소설 안에서 제목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작품 해설을 찾아 읽고 ‘달’은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예술의 세계, 또는 이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6펜스’는 물질과 실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의 현실 세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달과 6펜스 은화가 모두 은색의 동그란 모양이어서 그럴듯한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지요.

“달과 6펜스”라는 말이 이 작품의 제목이 된 것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 작품보다 앞서 나온 몸의 소설은 [인간의 굴레에 대해 Of Human Bondage](1915)였습니다. 타임스지 문학 부록(The Times Literary Supplement)이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립 케어리가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논평했다고 합니다. 이 논평을 읽은 몸이 그 비유를 이용하여 다음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는군요.

타임스지 문학 부록의 논평은 철학자 탈레스와 관련된 일화를 떠올립니다. 탈레스가 어느 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이를 목격한 트라케의 하녀가 깔깔거리며 놀렸다는 얘기 말입니다. 하늘의 일을 알려고 너무 열심인 나머지 발 앞의 것도 보지 못했다고 놀렸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 Theaetetus]를 보면 소크라테스가 이 일화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하녀의 똑똑한 지적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비판하지요. 멀리 있는 것에 관심을 두는 철학자의 중요한 역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몸 역시 소크라테스처럼 멀리 있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에 더 끌렸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소설 제목에 “달과 6펜스”의 비유를 빌리기는 하면서도 6펜스보다는 달 쪽에 한 표를 던지니까요. 그에 대해서는 어딘가에 이런 설명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 그는 달을 보느라 발밑의 6펜스도 못 보는 사람을 놀려야 한다고 배웠는데 원숙한 나이에 이르고 나서는 과연 전에 믿어야 했던 것처럼 그것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6펜스를 줍고 싶은 사람은 주워라. 달을 추구하는 일도 더없이 재미있는 놀이인 것 같다.”라는 말을 책의 서두에 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쓰지는 않았지만요. 또 1956년의 한 서신에서는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는 말도 했다 합니다.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땅에 향해 있던 눈을 들어 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인물에 속합니다. 안정된 삶과 가족을 버리고 외로움과 궁핍을 각오하고 예술의 세계를 향한 갈망을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제목에 대해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을 대표하는 ‘6펜스’가 물질적 가치를 상징할 수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왜 하필 ‘6펜스’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 딱 떨어지게 5펜스나 10펜스가 아니고 6펜스일까요. 알고 보면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10진법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5펜스나 10펜스가 딱 떨어지는 화폐 단위이지만 서머셋 몸이 이 소설을 출판하였던 1910년대 영국에서는 12진법을 사용해서 6펜스가 딱 떨어지는 화폐 단위였습니다. 1971년 10진법의 화폐 단위를 도입하기 이전에 영국에서는 1파운드가 240펜스였습니다.

12펜스가 1실링이 되고, 1파운드는 20실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죠. 지금은 1파운드가 100펜스이지만요. 10진법을 사용하기 전의 영국인에게 6펜스 은화라고 하면 오늘날 한국인의 500원짜리 동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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