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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의 약속 시각이 다가오는데 도저히 그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금방’ 가겠다고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고, 늦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미안해서 일단 도착해서 얼굴을 보고 기분을 풀어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2~30분 정도면 애인이 기다려줄 수도 있는 시간이라 생각해서 별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요? 어차피 약속한 시각에 도착할 수 없다면 상대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약속한 시각이 되기 전에 약속 시각을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10분이든, 한 시간이든 그만큼 늦겠다고 최대한 정확하게 도착 시점을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유 시간이 생긴다는 것은 대체로 휴식 시간이 생긴다는 의미이지만, 약속 시각이 지난 후에 생기는 여유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입니다.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서 버려지는 시간이지요. 이때 그 시간에 ‘여유’를 주는 것이 바로 정확한 약속 시각 재설정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기다리지 않는 사람’

Roland Barthes
Roland Barthes

약속 시각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소한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완전한 타인과의 약속만큼 엄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약속 시각에는 늦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고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약속 시각을 지키는 것이 사랑을 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임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가 바로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쯤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에 바쁜 일로 늦게 도착하려 애써 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약속 시각 이전에 도착하고야 마는 사람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기다립니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퇴근을 기다리고… 그런데 태생적으로 기다리는 시간은 짧은 것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애인이 항상 나보다 일찍 도착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기다림의 종류

기다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설레는 기다림과 불안한 기다림입니다. 설레는 기다림은 언제 올지 알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한 시각에 앞서 약속 장소에 도착해 애인이 올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설레는 기다림입니다. 둘 다 약속 시각 이전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누가 먼저 오든 둘 다 설레는 기다림을 안을 수 있습니다. 늦게 온 사람도 약속 장소까지 가는 길에 상대가 혹시 먼저 와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불안한 기다림은 언제 올지 모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한 시각이 지나가는 순간 설레는 마음은 점차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기다림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를 알아야 의미가 있고, 그래야만 기다림이 즐거운 것이 됩니다. 늦게 온다는 것은 아무 때나 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어린 시절 누구나 읽었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유명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와 주는 게 더 좋아.”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내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4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하겠지. 그리고 4시가 다 되었을 때 난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거야. 아마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그렇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맞추어 내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 어린왕자 (비룡소, 박성창 역)

누가 더 사랑하는 사람인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 시각에 늦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마음먹어야 하는 종류의 일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 사람이 항상 약속 시각보다 먼저 도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 시각이 지난 후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속상한 것인지 알고 있어서 애인이 그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내가 항상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는 다음 둘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사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거나, 상대가 나를 ‘더’ 사랑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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