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통해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이전 이상의 존재가 된다. 관련 소송에서 일부 청원인들이 보여주듯, 결혼은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들이 결혼의 의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들 남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다. 청원인들은, 그들 역시 결혼의 의의를 존중하며, 그 의의를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그 의의를 완성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의 하나에서 배제되어 외로움 속에서 살도록 선고받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요구한다. 헌법은 그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한다.
No union is more profound than marriage, for it embodies the highest ideals of love, fidelity, devotion, sacrifice, and family. In forming a marital union, two people become something greater than once they were. As some of the petitioners in these cases demonstrate, marriage embodies a love that may endure even past death. It would misunderstand these men and women to say they disrespect the idea of marriage. Their plea is that they do respect it, respect it so deeply that they seek to find its fulfillment for themselves. Their hope is not to be condemned to live in loneliness, excluded from one of civilization’s oldest institutions. They ask for equal dignity in the eyes of the law. The Constitution grants them that right.
–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문 중
사랑의 승리: 미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헌 판결에 대해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 커플도 결혼할 수 있는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관 9명 중에서 5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하여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것입니다. 윗글은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하는 의견을 낸 5명을 대표하여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작성한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미국에서는 2004년 매사추세츠 주가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주별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주가 있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동성 결혼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임을 인정하고, 개별 주가 자체적으로 동성 결혼을 금지할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이제 미국 사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사랑과 헌신을 약속하는 결합을 통해 양성의 결합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자유의 이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듯 사랑은 타인과 사회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주는 고결하고 위대한 인간 행위입니다. 사랑이 가장 기본적인 자유의 영역에 속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동성의 사랑에 유독 차별적이었습니다.
결혼의 재정의: 사랑에 토대를 둔 두 인간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결합
논란의 중심에는 결혼의 의미와 기능을 규정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남녀의 결합만을 법률로서 인정하고 양성 결혼에만 특정한 민사상의 권리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양성 결혼이 사회에 노동 인구를 공급하는 출산의 근원이고, 그 인구의 양육과 교육에 헌신할 부모와 가족의 역할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능의 결혼과 가족의 역할이 오늘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통 사회는 결혼의 의의를 출산과 가족 기능의 중요성에 관련지어서만 생각하고, 결혼이 두 연인이 꿈꾸는 사랑의 이상을 구현하는 길이며 그들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에는 눈감아 버린 잘못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결혼에서 사랑이 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글 첫머리에 인용한 판결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요.
결혼이 인간의 사랑의 이상을 구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면 동성 결혼은 양성 결혼과 동등하게 허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사랑의 뜻깊은 구현 방식인 결혼의 자유도 동시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은 이 점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일이 전통적인 결혼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양성 결혼의 기능과 중요성을 인정하는 일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동성 결혼의 권리를 인정하는 일은 동성애자들에게도 사랑의 자유를 누리게 하고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그들의 불행한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 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회 전체의 행복도 증가시키는 일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의 보수성: 인류의 진보는 느리다
미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은 이성적 존재임을 자랑하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볼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정도의 진전도 힘겹게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결은 5:4의 비율로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졌으며 4명의 대법관이 제시한 반대 의견에 대한 지지 여론도 만만치 않게 높습니다.
반대 의견의 논거를 살펴보면 상당 부분 법률적 선례와 헌법 조항과의 일치 여부 등과 같은 법 기술적인 면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쟁점이 되어 있는 결혼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의견도 대체로 전통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성 결합만이 자연 질서와 삶의 필요에 부합한다고 암시하는 논거는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논거는 결혼이 자연에는 없는 인간 특유의 제도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도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그 기능에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도 있고 필요하면 폐기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사정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미국의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6월 28일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퀴어 문화 축제에 반대하여 벌어졌던 기독교인들의 북춤과 발레 시위가 현실을 보여줍니다.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한 기초적인 수준의 이해도 부족한 사회에서, 결혼의 범위에 동성 간의 결합도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과 반성을 몇십 년 늦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숙명인지 모릅니다. 동성 결혼 합법화를 찬성하는 입장에 있든 반대하는 입장에 있든 미국인들이 논쟁하는 주제의 차원이 우리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참고] 판결문 일부 발췌 번역
●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문 중 “결혼은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을 구현하기도 한다”는 내용은 다음 청원인의 이야기에서 온 것입니다.
이 소송 건들 중 세 가지 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청원인들의 소송이 그들의 관점에서 매우 급박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하이오 소송 건의 원고, 청원인 제임스 오버게펠이 존 아서를 만난 것은 20년 이상 전이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기 시작하였고,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2011년, 아서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을 진단 받았다.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이 질병은 진행성으로 치료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다. 2년 전 오버게펠과 아서는 서로에게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아서가 죽기 전에 결혼하기로 다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하이오 주를 떠나 동성결혼이 합법인 메릴랜드 주로 갔다. 아서는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두 사람은 볼티모어의 비행장에 머문 의료수송기 안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3개월 뒤에 아서는 죽었다. 오하이오 주 법은 오버게펠이 아서의 사망증명서에 생존배우자로서 이름이 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법규에 따라, 그들은 죽어서도 남모르는 관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에서 강제한 이 이별을 오버게펠은 “남은 삶 동안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서의 사망증명서에 생존 배우자로서 기록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였다.
Recounting the circumstances of three of these cases illustrates the urgency of the petitioners’ cause from their perspective. Petitioner James Obergefell, a plaintiff in the Ohio case, met John Arthur over two decades ago. They fell in love and started a life together, establishing a lasting, committed relation. In 2011, however, Arthur was diagnosed with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or ALS. This debilitating disease is progressive, with no known cure. Two years ago, Obergefell and Arthur decided to commit to one another, resolving to marry before Arthur died. To fulfill their mutual promise, they traveled from Ohio to Maryland, where same-sex marriage was legal. It was difficult for Arthur to move, and so the couple were wed inside a medical transport plane as it remained on the tarmac in Baltimore. Three months later, Arthur died. Ohio law does not permit Obergefell to be listed as the surviving spouse on Arthur’s death certificate. By statute, they must remain strangers even in death, a state-imposed separation Obergefell deems “hurtful for the rest of time.” App. in No. 14–556 etc., p. 38. He brought suit to be shown as the surviving spouse on Arthur’s death certificate.
●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오늘 법원은 모든 주가 동성 결혼을 인가하고 인정하기를 명령하는 특별한 조치를 취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결정에 기뻐할 것이고 저는 누구의 축하도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통치가 아니라 법의 통치를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하자면 다수 의견의 (동성 결혼 합법화 찬성 의견) 접근 방식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동성 결혼의 지지자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로써 끝납니다. 다섯 법률가는 토론을 종결하고 결혼에 대한 그들 자신의 비전을 헌법의 문제로서 법제화하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이 사안을 빼앗아 내면 많은 이들이 보기에 동성 결혼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워지고, 결국은 받아들이기 훨씬 어려운 극적인 사회 변화를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Today, however, the Court takes the extraordinary step of ordering every State to license and recognize same-sex marriage. Many people will rejoice at this decision, and I begrudge none their celebration. But for those who believe in a government of laws, not of men, the majority’s approach is deeply disheartening. Supporters of same-sex marriage have achieved considerable success persuading their fellow citizens—through the democratic process—to adopt their view. That ends today. Five lawyers have closed the debate and enacted their own vision of marriage as a matter of constitutional law. Stealing this issue from the people will for many cast a cloud over same-sex marriage, making a dramatic social change that much more difficult to accept.
결혼이 남녀의 결합이라는 이러한 보편적 정의는 역사적 우연이 아닙니다. 결혼 제도는 어떤 정치적 운동이나, 발견, 질병, 전쟁, 종교적 교의, 혹은 세계사의 다른 어떤 동력의 결과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분명 게이나 레즈비언을 배제하려는 역사 이전의 어떤 결정의 결과로 발생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 유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연 현상 가운데 발생했습니다. 그 필요는 평생의 관계라는 안정된 조건 속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헌신하는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잉태하는 것을 보장하는 일이었습니다.
This universal definition of marriage as the union of a man and a woman is no historical coincidence. Marriage did not come about as a result of a political movement, discovery, disease, war, religious doctrine, or any other moving force of world history—and certainly not as a result of a prehistoric decision to exclude gays and lesbians. It arose in the nature of things to meet a vital need: ensuring that children are conceived by a mother and father committed to raising them in the stable conditions of a lifelong relationship.